비가 내리는 날에는 발밑에도 어깨 위에도 풀냄새가 진동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졌다. 어제는 불심검문을 두 번이나 당했다. 추석 대비 특별방범 기간이라면서 경찰 아저씨는 내게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말했다.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이는데 괜히 머쓱해지면서 웃음이 나왔다. 같이 있던 친구는 신분증이 없어 주민등록번호를 직접 불러 주었다. 싱겁지만 우리는 수배 명단에 오를 만큼 잘생기거나 나쁜 사람은 아니었기에 영화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영등포에서 또다시 경찰과 마주쳤는데 술에 취한 어느 아저씨는 불심검문에 항의하며 112에 신고했다. 나는 발상의 전환을 목격했다는 기쁨에 큰 감동을 느꼈다. 옆에 사람은 그냥 지나가는데 왜 자기만 붙잡느냐는 것이다. 내가 생긴 게 개떡 같으냐고. 덕분에 경찰이 열 명쯤 모였고 그들은 상처받은 아저씨를 달래주니라 온갖 애교를 다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