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없이 소나기를 만난 것처럼 잿빛 하늘 아래서 길을 잃었다. 그럴 때면 신문지를 뒤집어쓰고 술래잡기 놀이하듯 숨이 차게 달려가거나 허름한 처마 밑으로라도 재빨리 몸을 피해야 했다. 더보기.그러나 나는 옷이 다 젖고서야 하늘을 노려보며 원망스런 울음을 토하고 싶어졌다. 돌아보면 언제나 제자리를 서성대며 그 익숙한 풍경에서 멀어질까봐 소리 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애원을 해 보아도 내가 누울 작은 땅은 어디에도 없었다. 예상치 못한 것도 아니었건만 시간은 언제나 내 기대보다도 훨씬 바쁘게 움직인다. 달라지길 바라지만 결국 우리는 또 좌절하고 절망할 것이다. 달력의 숫자가 아무리 시작을 강요해도 분명 아픈 날이 있을 테고 짜증나고 우울한 일들이 나를 괴롭힐 것이다. 로또에 당첨되는 행운 같은 건 나와는 상관없는 타인의 전유물이며 이효리가 내게 프로포즈할 가능성도 전혀 없다. 지난 날 그랬듯이 엄마의 잔소리에 나는 굳세게 개길 것이고 우산 없이 나간 날 하필이면 비는 또 쏟아질거란 거지같은 얘기다. 그래 내게만 비가 오는 날. 그렇지만 내리는 비를 맞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말하고 싶다. 그 비가 목마른 가슴을 촉촉히 안아주고 부끄러운 내 눈물을 모른 척 가려줄테니. 그래서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언제나 좋은 것들을 가질 순 없겠지만 내게 허락된 모든 것들로부터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씩씩하게 걸어가 언젠가 우리 만나면 편안한 웃음 보이기를. 나와 당신의 출발 앞에. 나는 소망한다. 다 잘 될 거야. 우리가 꿈꾸고 있다면.